Home > 역사건축명소 > 건축물

건축물

국문명칭
양주 회암사지
주소
경기도 양주시 회암사길 11(율정동)
종류
공간환경
용도
사찰
건축주
국유,사유
관리자
양주시(관리자)
문화재
사적
시공구분
신축
양주 회암사지_01확대보기
건축설명
조선 전기까지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고 전해진다. 태조 이성계는 왕위에서 물러난 뒤 화엄 사에서 수도생활을 하기도 했다. 성종 때는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명에 따라 절을 크게 넓히 는 데 1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. 그 후 명종 때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전국 제일의 사찰이 되었다 가, 문정왕후가 죽은 뒤에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절이 불태워졌다. 이 절이 있던 자리에서 500m 정도 올라가면 지금의 회암사가 있는데, 그 부근에는 중요 문화재들이 남아있다. 고려시대에 세 운 나옹의 행적을 새긴 회암사지선각왕사비(보물 제387호)를 비롯하여, 지공의 부도 및 석등 (경기도유형문화재 제49호)·회암사지부도(보물 제388호)·나옹의 부도 및 석등(경기도유형 문화재 제50호)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쌍사자석등(보물 제389호)·무학대사비(경기도유형 문화재 제51호)·회암사지부도탑(경기도유형문화재 제52호)·어사대비(경기도유형문화재 제82호)·맷돌(경기도민속자료 제1호)과 당간지주, 건물의 초석들이 남아 있다. 이 사찰은 산 간지방에 위치하면서도 평지에 있는 절에서 볼 수 있는 남회랑을 만든 점에서 고려시대의 궁궐 이나 사찰 배치형식을 보이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. 그만큼 조선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 던 유명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. 원형 그대로 발굴한 후 문화와 역사적 가치창출로 지역의 전 통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역사적 교훈이 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으로 있다.
다음글
기천서원지
이전글
온릉