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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간환경

국문명칭
대포서원
주소
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황금로23번길 30-30(대포리)
종류
건축물
용도
서원
건축주
민강수
관리자
여흥민씨산청종회(관리자)
문화재
문화재자료
시공구분
신축
지역지구
자연녹지지역
대지면적
5614 m3
건축면적
185 m3
연면적
185 m3
건폐율
3.3%
용적률
3.3%
층수
지상 1층
주동수
5동
구조
목조
대포서원_01확대보기
건축설명
만년을 김포 통진에서 보낸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눌재 양성지(1415~1482)의 공덕 을 기리는 뜻으로 세운 서원이다. 왼쪽에 현대식 강당이 있고 그 뒤쪽으로 3문과 사당을 세웠 다. 사당의 규모는 정문 8.3m, 측면 3.7m이며, 팔작지붕의 익공(翼工) 건물이다. 양성지는 세종, 문종, 단종, 세조, 예종, 성종 등 무려 6조에 걸쳐 다양한 정책을 펼친 신진 사 대부로 공조판서, 대사헌, 홍문관대제학 등 나라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. 집현전 관리로 있던 젊은 시절에는 세종의 총애를 받았고, 연륜과 경륜이 한층 무르익은 중년에 이르러서는 세조가 그를 가리켜 ‘해동의 제갈량’이라 일컫기도 했다. 중국 고대의 요순만을 이상적인 군 주로 떠받들던 시절에 단군을 국조로 모셔 받들기를 주장했으며, 중국의 역사만을 배우던 시 절에 우리나라 역사도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. 무인과 무예를 멸시하던 당시 풍조에서 군비 확충과 무인 우대와 같은 ‘파격’을 주장하기도 했다. 이 같은 그의 주장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다. 조선시대 사림(士林)들 의 정치가 명분만을 앞세워 왜란과 호란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과, 강력 한 지도력과 실용정치를 요구하는 시대를 만났기 때문이다. 특히 조선 실학의 선구자로 받들 어지며 정조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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